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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아니 절 이렇게 버리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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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09.07.30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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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절 이렇게 버리시나요
             
槿岩/유응교

갈대가
서걱이는 천변에서
오늘도
차가운 비를 맞으며
홀로 지샌다.

그러나
온갖 욕심으로 가득한
탐욕의 궁둥이를 떠받치던 삶 보다
얼마나 홀가분한가.

한때는
나도 피곤에 지친 그대를
포근하게 안아 주었건만
이제는
이렇게 무참히 버려진 신세

내 비록 찢기운 몸으로
속살이 드러난 채
풀숲에 버려져 있지만
맑게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진실을 가장한
당신의 위선의 웃음소리 보다
내마음을 한결 편하게 하오

 
탐욕에 눈이 어두운
당신의 음울한 거실보다
싱그러운 풀향기와 별빛이
이렇게도 좋으니
차라리 나 이제
버겁고 힘겨웠던
지난 날일랑 모두 잊어버리고
언제까지 이곳에 있고 싶구려.

 

다리 밑 풍경     
                                    槿岩 유응교

낡고 우중충한
콘크리트 다리 밑에
허름한 점퍼를 걸친
노인들이 앉아 있다.

세월이 흘러가듯
하염없이 시내는 흐르고
흐르는 세월을 잡을 수 없는
노인들이 세월을 한탄하고 있다.

다리가 성치 못한 의자 서 너 개
허리도 상처 난  소파들이
다리 아픈 노인의 맘을 아는 듯
허리 휜 노인의 심정을 아는 듯
간신히 노인들을 부축해 주고 있다.
 
구겨진 지폐보다 더 구겨진
삶을 등 뒤로 하고
화투짝을 뒤적거리며
한낮의 더위 속에서
불어오는 다리 밑 바람결에
한사코 시간을 붙들고 있다.



백일홍의 슬픔
                          
                                槿岩/유응교


그대 잠든 무덤가에
저도 함께 묻히어
백일동안 피어 있는
심정을 아시는지요

그대가 바다건너
괴물을 죽이고
승리하면
흰 깃발 날리며 오신다더니
괴물의 피가 물들어
붉은 깃발이 된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순절한 저를 용서 해 주세요.

그렇다고
당신마저
제 뒤를 따라오시면 어떡합니까

붉게 타오르는 제 사랑의 빛깔이
백일동안 시들지 아니하고
그대의 무덤가에 피어 있는 까닭을
그대는 모르실거에요.

바닷가에서
백일동안
애타게 기다리던
제 심정을
그대는 정말 모르실거에요.
그러나 저는 행복합니다.
그토록 기다림을 준
그대가 있었기에
오늘도 이렇게 불타는 가슴으로
마냥 행복하니까요.





안면도 파도리
 
                                   근암/유응교
 


안면도 파도리 저 하얀 파도
언제부터 저토록 뒤척이었나
 
안면도 조용히 잠들려 해도
밤새 보채며 흔들어 깨우네
 
아이들은 하나 둘 파도에 밀려
은모래 털어내며 뭍으로 가고
 
파도리 초등학교 파도에 젖고
마지막 졸업식장 눈물에 젖네
 
파도에 밀려 떠나가는 게
어디 저 파도리 아이들 뿐이랴
 
우리의 사랑도 저 물새들도
세월 따라 저렇게 떠나가는 걸
 
안면도 파도리 저 하얀 파도
언제쯤 깊은 잠 꿈속에 들까



산나리꽃의 나들이


                             槿岩/유응교

봄바람이 불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바람이 난다더니
제가 바람이 들었나 봐요.

물방울 무늬 컬러에
붉은 원피스 받혀 입고
머리는 부풀리게를 하고
주근깨는
분 화장으로 단장을 하니
그래도
산골 소녀티는 벗어났지요

가는 허리
낭창거리며
산길 나서는 제 모습이 어때요

이렇게 좋은 봄 날
가슴이 울렁거리는 게 어디 저 뿐인가요.
당신도 때때로 멋을 부리고
선 그라스에 양산 받치고
머플러 휘날리며
신 바람나게 집을 빠져 나온 적 있죠

그렇다고
제 순결까지 의심하지는 마세요.
아무리 세도가 높다고
저를 함부로 했다가는
제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는 저의 순결을 지킬 테니까요.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앞이라면 몰라도
제 마음을 결코 열지 않을 거에요.

때때로 멋을 부리고
흥겨운 발걸음으로
콧노래 부르며 즐겁게
꼭 닫힌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와 보세요.
언제나
사랑과 행복이 가득 넘칠 테니까요.


 

槿岩/유응교 교수 기자 desk@eforest.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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