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6(금)

진달래꽃과 함께 그들을 보내다.

5월5일 순직하신 영령들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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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1.05.1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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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추장스럽게 질척거리는 비다.

하늘을 가득 메운 검은 구름사이로 숨어버려 달빛조차 없는 어둠속을 헤매 인지 벌써 8시간째다. 시커먼 안개로 뒤덮인 산속의 시야는 마치 검은 악마가 산과 계곡을 통째로 삼켜버린 듯 한치 앞도 알아 볼 수 가 없다. 언제 부터인지 내 몸에선 비와 땀이 범벅이 되어 짠내가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찾기 전엔 절대 산을 내려오지 마라!”는 절박 하다못해 애끓는 심정의 본부장님의 목소리가 떠오르자 젖은 내 어깨가 더욱더 무거워진다. 생사도 알 길 없는 사라진 동료를 찾기 위해 무거운 산행에 함께 오른 항공구조대원들. 지금 내가 가진 목숨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보다 앞서 사고를 당한 그들의 것 일수도 항공가족들의 것 일수도 있기에...

단지 내 머리위를 비추고 있는 후레쉬 불빛과, 같이 있는 대원들의 간절한 기도만이 그들을 찾을 수 있으리라.

임 기장님, 박 검사관님! 부디 살아만 있어주세요. 조금만 더 힘을 내세요. 저희가 곧 갑니다. 곧 찾아내겠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주세요.’ 간절한 기도를 발끝과 손끝에 집중시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둔 산속을 여기저기 더듬으며 찾고 있다.

어디에 있는 걸까? 분명 살아 있을 것이라 생각해보지만 문득문득 뇌리를 스치는 불길함과 경망스런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다.

간혹 교신하는 구조대원들의 음성과 무전기에서 들리는 치직거리는 기계음만이 무서운 어둠속에서 메아리 칠뿐...

그들은 분명 이산, 이 어둠속에 있을 거라 생각하며 축축히 비에 젖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강원도출신이며 특수부대를 전역한 나지만 이렇게 어둡고도 안개낀 험한 산을 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이 구조에 나선 대원들도 말을 잃긴 마찬가지... 거친 숨소리만 낼뿐 누구하나 말을 꺼내길 주저하며 예상 사고지점을 찾아 거친 나무줄기와 수풀을 헤치고 또 헤친다.

사고가 발생한지 벌써 10시간. 결코 도울 생각이 없는 듯한 지독한 기상조건과 험하디 험한 산세와의 싸움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살아 계신 거죠? 대답 좀 해주세요. 어디계신지 저희에게 신호라도 좀 보내 주세요. 제발, 제발...’ 그들은 우리의 바람을 분명 듣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헛잡은 나뭇가지에 찔리길 수십 번, 젖은 낙엽에 발이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위에 발이 걸려 넘어져도, 낙엽과 진흙이 한데 뒤엉킨 늪과 같은 웅덩이에 빠져도, 누구하나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고통을 잊어 버린 걸까? 아님 그들을 생각하며 고통을 지워 버린 걸까? 불과 몇 일. 아니, 몇 시간 전까지도 같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동료가 지금은 생사도 확인 할 수없는 실종자가 되어 있음이 도저히 머리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강원도! 영서와 영동의 기후차이가 확연히 다른 곳이다. 분명 내가 있던 영서지역은 화창하고 맑은 날씨를 보이고 있었건만, 지금 이곳 영동지방은 비가 오며 안개가 짙고, 바람도 강하게 불며 짓궂은 날씨를 보이고 있다.

영서와 영동은 거리상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백두대간 중추를 태백산맥이 갈라놓고 있어 비행으로 횡단하기까지는 많은 기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항공기를 영서, 영동으로 지원하기가 까다로워 강원도 내에 산림항공관리소가 2개소가 있는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근무를 하는 직원들은 많은 긴장 속에 생활하고 있고, 그러한 긴장들이 임무수행에 있어서 장,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험난한 산악지형과 변화무쌍한 기상 탓에 이곳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말을 하지 마라.’ 할 정도로 강릉산림항공관리소에서 근무를 했던 직원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거들곤 했었다.

 

우리가 해매이고 있는 지금 이곳도 백두대간 오대산 자락. 등산로도 없다. 산삼이나 약초를 캐는 심마니조차도 와 봤을 리 없을 것 같은 산간오지 속이다.

이런 곳에 추락한 헬기는 하늘에서만 찾을 수 있을 터인데 그마저도 기상이 도와주질 않으니 항공기를 이용한 수색도 불가능해 지상수색대원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무거운 책임감과 걱정을 등에 지고 꼭 찾아오라는 본부장님의 당부를 가슴에 안고 시커먼 어둠을 헤쳐 나간다.

비라도 그쳤으면, 안개라도 걷혔으면, 이산은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가 보다. 아니 싫어하는 가보다. 산신령이라도 있으면 도와 달라 빌고 싶은 마음뿐이다.

산속을 헤매 인지 12시간.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목마름도 배고픔도 잊은 지 오래다. 그래도 밝음이 있어 희망을 느낀다.

그래 이젠 찾을 수 있어!’ 눈에서부터 떠오른 희망이 발끝까지 전달된다. ‘조금 만 더 가보자. 저 계곡엔 분명 있을 거야.’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며 안개가 사라지는 곳을 향해 무겁고 지친 발걸음을 바삐 움직인다.

얼마쯤 왔을까? 여기도 아니구나 하며, 한숨을 쉬는 내 코끝에 메케한 기름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건 분명 항공기 연료냄새다. 안개가 걷히고 해가 뜨더니 더욱 더 짙어지는 항공기 연료냄새가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달린다. 냄새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린다. 이젠 찔리고 미끄러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찾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고 지친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애끓는 바람은 그저 바람뿐이었을까... 우리의 희망은 순식간에 검푸른 동해 바다에 잔혹하고도 무참히 던져저 버렸다. 처참한 항공기잔해, 검게 그을린 숲, 그 속에 우리에 희망마저도 불타버렸다.

살아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는데, 우리의 눈앞엔 그들의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주검만이 보일뿐이다.

모든 대원들이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다. 허탈하다. 그토록 애원했건만,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건만. 그들은 우리의 바람을 끝내 져버린 채 동해바다가 보이는 험한 산기슭에 늘 그들과 함께였던 헬기와 영원히 잠들고 말았다.

우리의 연락을 받고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현장소식을 기다렸을 경찰, 소방대원, 기자들로 인해 사고 현장은 인산인해가 되어버리고 쓸쓸한 주검은 이제야 우리들 손에 들려 산을 내려온다.

하늘을 사랑하고 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았던 시간은 이제 멈춰버린 채 싸늘하게 식은 흔적만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가족에게 돌아간다.

마치 찾아주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새 하늘은 맑게 걷히고 이젠 편히 내려가라고 환히 길을 열어준 산이 야속하기만 하다.

밤새 보이지도 않던 진달래꽃만이 내려가는 길을 마중해 주었고, 마지막 가는 그들의 길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진달래꽃과 함께 사랑하던 산을 내려왔다.

 

어린이날에 가족을 잃고, 어버이날에 안장된 그들을 영원히 보내야 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매스컴 에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떠들썩하고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에게선 잊혀 질 얼굴과 이야기들이겠지만...

산을 사랑하고, 산을 지키고 가꾸며, 그 산속에 그들을 묻은 우리들은 결코 그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비내리는 오늘, 마지막 길을 배웅하던 빗물 머금은 진달래꽃과 그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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