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6(금)

(시) 엉겅퀴꽃의 시련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09.07.06 21:1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槿岩/유응교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남해의 외로운 섬
거친  파도를 포용하며 
너는 오늘도 흩어 진 머리로
꿋꿋하게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

연분홍
머리칼 휘날리며
저녁노을 바라보는
너의 애처로운 자태 앞에서
차마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데
사내처럼 억센 해풍만 기웃거리나

비바람에
갈래갈래 찢기고 찢기어도
가슴깊이 간직한 사랑하나
심중에 남아 있는데
오늘도 남쪽 끝 마라도에서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미소 짓누나

 

능소화의 외로움

 槿岩/유응교

아름다움 때문에
사랑 받는 일은 쉬우나
아름다움 때문에
버림받는 일도 쉬운가요
시기와 질투와 모함 때문에
사랑하는 이의 눈과 귀를 멀게 하니
이렇게 쓸쓸하고
외로운 신세가 되고 말았군요

그대를 그리워 하다가
애타는 가슴을 부여잡고
그대 곁을 떠납니다만
그대가 지나는 담장 밑에서
그대를 간절히 기다리는
제 마음을 그대는 아시는지요.

그대가
오시는 모습을 보려고
이렇게 발 돋음하고
그대가
오시는 소리를 들으려고
이렇게 귀를 크게 열고 있어요
담장너머 그대를 기다리며 흐느끼는
제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군요

그러나 그대 아닌 다른 사람은
제 자신의 몸을 건드릴 수없어요
아름다운 독이
허튼 수작을 부리는 사내의 눈을
어둡게 만들고 말테니까요.
그대여 외로운 이 밤이  다가기 전에
다른 사람이 저를 탐하기 전에
어서 빨리 제품으로 다가오소서!

 

대둔산에서
 
                          근암/유응교

  
대둔 산 자락에
비껴 앉은 정자에서
벗들과 마주 앉아
동동주를 따르는데

끝없는 운무속에
동양화 펼쳐 있네
 
 화필을 들고 서성이는
부질없는 화가여
예 와서
술이나 함께 하세
참으로 좋을시고
동양화 예 있네

 

술잔을 높이들어

머언 산 바라보니

솟은 듯 누웠는 듯
한많은 여인네가
아릿한 자태를
보이다 말다 하네

 
참으로 묘한지고
속세에 잊은 연인
예 와서 다시 보네
동동주 남았는가
한잔 더 부어주게.




연꽃이 피는 뜻은

  槿岩/유응교

흙탕물 마다않고 꼿꼿하게 뿌리내려
티 없이 맑고 고운 자태로 피어나며
세속에 오염된 마음 예 와서 씻으라네.

이슬비 내리는 날 연못가 거닐 적에
은구슬 한데모아 한사코 쏟아내니
물욕에 사로잡힌 맘 예 와서 사라지네.

이승의 탁한 마음 말갛게 씻어주고
바람 따라 향기 피워 내 영혼 흔드나니
불심이 사라진 가슴 예 와서 다시 찾네




고   향

 근암/유응교

지리산 왕실봉아래
아늑한 터 있어
대나무 숲아래
초가하나 있었지
 
앞에는 오봉산이
언제나 의좋게 앉아 있고
그 아래 섬진강이
세월을 씻어내고 있었지
 
동구밖에서도 우람차게 보이는
그 크고 높은 느티나무는
어린시절 나의 꿈을 키워주던
늘 푸른 그늘로 서 있었지
 
낮은 토담아래
접시꽃 씨를 뿌리시던
어머님은 지금 어느메서
또 다른 씨를 뿌리실까...
 
상추쌈 만들어
검은 보리밥 들게 하시던
할머니는 지금 어디에서
상추를 솎아내고 계실까
 
앞마당 대숲가에 흐르는
시리고 맑은 물은
오늘도 쉼없이 흘러가는데

아카시아 꽃잎을
함께 따던 순이는
어느 하늘아래
꿈을 키워가고 있을까

 뒷동산에 올라
먼데 하늘가에 피어나던
구름을 바라보며
놓아 먹이던 소를 찾아
해질녘 돌아오던 고향길은
풀섶에 우거져 보이질 않는데
밥짓는 저녁 연기도 이제는
사라진지 오래인데

어디선가 뻐꾸기 울음소리는
옛일처럼 들려온다.
 

 

유응교(柳應敎)교수 기자 desk@eforest.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 엉겅퀴꽃의 시련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