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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대통령의 유서

  • 유응교(柳應敎)교수 기자
  • 입력 2009.05.24 21:21
  • 조회수 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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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근암/유응교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

책을 읽을 수도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원망하진 말아라.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니던가.

마을에 작은 비석하나 세우고

화장하라는 짤막한 유서를 남기고

우리 곁을

이 나라의 대통령은

저 세상으로 홀연히 떠나버렸다

낮의 대통령인 그가

밤의 대통령 언론의 횡포 앞에

바보처럼 맞서 싸우고

배운 자의 오만 앞에

과감히 앞서 싸웠던 바보 같은 그가

가진 자의  세상을 바꾸어 보겠다고

우직하게 대들었던 그가

바보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의 개혁을 외치며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자던

순수한 꿈을 다 이루지 못하고

천국으로 비상한 그대여!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많은 꿈들을

하늘나라에서나 이루어 주소서!

온 국민의 슬픔과 애도의 물결 속에

영원한 안식처에 고이 잠드소서!

채 석 장

근암/유응교

거기 누구 없소
내 심장에
예리한 구멍을 뚫어
쩍하고 벌어지게
도화선에 불을 붙여 주오

 
천년 쌓인 침묵을 깨고
나도 이제 말을 하고 싶소
저 암울했던
지난 역사를 불태우고
새로운 자유를 구가하고 싶소
멋진 한판 승부를 벌리고 싶소
쩍 벌어진 시퍼런 몸으로
 
거기 누구 없소
싸늘하게 누워있는
내 육체위에 예리한
조각칼을 대어 깎아 내주오

쩌렁쩌렁한 망치소리로
눈과 귀와 코를 만들고
입을 만들어 외치게 해주오
듣고 보게 해주오
썩은 냄새라도 맡게 해주오

이대로 이대로
숨막히는 어둠속에
누워 있진 못하겠오

내 몸에 질긴 동아줄을 둘러
단단히 포박을 하여
저 육중한 기중기에 들어 올려
얽히고 설킨 이곳을 떠나
쩌렁쩌렁한
망치소리에 새로이 태어나고 싶소.



흑장미의 유혹

槿岩/유응교

그대가 오랜 세월의 여울목에서
검붉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그대의 우수에 찬 검은 눈빛을
먼저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소.

그대가 영롱한 아침 이슬을 털고
조용히 모습을 드러낼 때
나는 그대의 풍만한 가슴에
혼미한 마음을 어찌 할 수 없었소.

그대가 달빛어린 뜨락에서
겹겹이 쌓인 마음을 열고
조용히 창문을 열 때
나는 그대의 감미로운 향기에 취하여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소.

그대의 순결을 지키기 위하여
푸른 잎 사이사이 숨겨둔 사랑의 가시에
내 심장이 찔리어 피를 흘릴지라도
황홀한 고통 속에
영원히 난 그대 품에 잠들고 싶으오



튤립의 애원

槿岩/유응교

왕관과 검과 금괴를 선물한
씩씩하고 늠름한 세 기사의
추파를 뿌리치고 떠나온 사랑이
이리도 서러워서
그대들이 준 붉은 왕관을 쓰고
검을 들고 서서
금괴를 뿌리로 하였나니
그대여
내 사랑 이제라도 다시 받아주오.

그러나 오로지 한 사람만
택하라고 하신다면
저는 어찌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가혹한 시험입니다.
제 앞에서 피나는 결투를
하신다 해도
차마 저는 볼 수가 없습니다.
영예도 용기도 부귀도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저 하나만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그대의 붉은 마음 하나만
제게 보여 주세요.
그러면 저는 그대의 품에 안기어
아름다운 미소로 답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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