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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가 말하는 최고의 효도는?

- 어버이날 국무총리 표창 받은 사공근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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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6.06.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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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행으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사공근순씨가 시어머니와 함께>

보름달처럼 하얗고 고운 얼굴에 늘씬한 몸매와 키. 그녀가 빨간 원피스에 뾰족구두를 신고 거리를 걸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시선을 빼앗겼다.

1980년대 멋쟁이. 요즘으로 치자면 소위 ‘패션피플’이었던 스물다섯의 대구미녀가 있었다. 대구에서 나고 자랐고 직장생활도 하던 ‘도시여자’는 그해 경북 상주로 시집왔다.

성실하고 듬직한 스물아홉 시골청년에게 반해 택한 시골에서의 결혼생활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은 물론, 종가집인 시댁은 제사만 1년에 11번이었다. 다른 며느리들은 모두 먼 타지에 있어 맏며느리인 그녀 혼자 집안일을 해내야 했다.

◇ 아픈 시어머니 35년째 봉양

지난 6일 구미시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 제44회 어버이날 기념식에서 효행상(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사공근순(56)씨의 젊은 시절 이야기다.

“특별할 것도 없어요. 그 시절엔 다들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고, 제사는 뭐 우리 집만 지내나요? 당연한 일인데 상까지 주니 부끄럽습니다.”

늙고 병든 노인을 학대하거나 방치한 가족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오히려 늙고 병든 부모를 보시고 살면 효부나 효자 소리를 듣는 사회.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녀의 수상소감은 놀랍기까지 하다.

스스로 대단하지 않고 당연한 일이라고 얘기했지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녀는 시집온 이후 시부모님을 모시고 남편 박윤주(60)씨와 함께 상주에서 곶감과 벼농사를 지었다.

오랜 암 투병 후 돌아가신 시아버지의 간병도 그녀 몫이었다. 또 올해 88세로 지병이 있는 시어머니를 35년간 봉양하며 1남 1녀를 훌륭히 성장시켰다.

최근 거동이 더욱 어려워져 병원에서 입원생활을 하고 있는 시어머니를 위해 매일 음식을 준비해 간병하는 등 효(孝)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사공근순씨가 첫 아이와 찍은 사진. >

또 농사일과 간병으로 힘들고 바쁜 와중에도 어버이날·경로잔치 등 마을의 대소사에도 솔선수범한다.

적십자봉사회를 통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홀몸노인들을 위한 목욕봉사와 반찬봉사가 주를 이룬다.


“어른을 모시고 살다 보니 홀로 계신 어르신들을 보면 남 같지 않습니다. 그분들께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계속할 생각입니다.”

그녀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이 들고 아픈 어머니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집안의 큰 어른을 자식 된 도리로 모시는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생각의 차이가 집안 내에서 부모의 위치를 바꾼다. 나이 들고 아픈 부모는 아기처럼 돌봐줘야 하는 나약하고 작은 존재가 아니라 아랫사람으로서 당연히 공경하고 모셔야 하는 큰 어른이 되는 것이다.

◇ 마음먹기에 달린 효도
“하지만 요즘 세상에 며느리들에게 옛날처럼 시부모와 함께 살라고 하면, 더구나 병든 시부모를 봉양하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아마 기겁을 하겠지요. 친아들과 딸, 사위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겁니다. 꼭 부모와 함께 살아야 효를 다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와 남편 박씨는 예나지금이나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어머니와 상의하고, 오늘 누구를 만났는지, 점심으로 뭘 먹었는지 등 하루 일과를 일일이 보고하듯 이야기한다.

집을 수리하거나 농사와 관련된 큰일은 물론, 텔레비전을 사거나 벽지를 새로 바꾸는 작은 일까지도 어머니의 허락을 구한다.

그녀가 생각하는 효도는 이처럼 거창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일이고, 지금 당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부모는 끊임없이 자식들에 대해 알고 싶어 하고 대화하고 싶어 합니다. 제가 부모가 돼보니 그 마음을 더 잘 알겠더군요. 용돈을 드리거나 여행을 보내드리는 것도 효도라 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최고의 효도는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고, 부모를 외롭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녀들도 그런 그녀를 쏙 빼닮았다. 대학 졸업 후 서울과 대구에서 살고 있는 남매는 매일 전화를 걸어 일과를 이야기 한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도 꼭 부모님과 상의한다.

<사공근순씨가 받은 훈장과 표창장. >

누가 강요하거나 시키지도 않았다. 자신의 부모가 그 부모에게 한 행동을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보고 배운 것이다.

혹자는 그녀를 보고 힘든 삶을 살았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그녀의 얼굴빛은 무척이나 맑고 표정도 밝다. 곧 환갑을 앞두고 있다곤 믿기지 않을 정도다.

억지로 행하는 효가 아니라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도 나지 않고 불만도 없다. 남은 인생 거창한 바람도 없다고 했다.

그녀는 “그저 어머님이 더 편찮으시지 않고 지금처럼 가족들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함께 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또 “자식이 부모를 모시는 당연한 일로 효행상이나 표창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예전처럼 어른을 공경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다시 만들어진다면 요즘처럼 흉흉한 사건도 자주 발생하지 않는, 조금 더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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