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수)

(시) 상사화의 이별 , 한글 봄 나들이 풍경, 모란꽃의 덕성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09.10.16 19:3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상사화의 이별 
 
                            槿岩/유응교

서로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서로 사랑한다 말하지 못함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서로 끝없이 그리워하면서도
서로 그립다 말하지 못함은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서로 간절히 만나고 싶지만
서로 만나지 못함은
얼마나 쓰라릴까요?

서로 눈빛을 보며 미소 짓고 싶지만
서로 바라보며 미소 짓지 못함은
얼마나 슬플까요?

서로 위로하며 두 손 잡고 싶지만
서로 위로하지 못함은
얼마나 외로울까요?

그러나 저는 석 달 열흘
묵언 정진이 끝나는 그날까지
이 숲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한글 봄 나들이 풍경
 
                          근암/유응교
 

햇빛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른 봄날
등이 굽은 ㄱ자가
거뭇거뭇한 뒷 동산 깔끄막을
싸목싸목 올라 간다.
 
아지랑이 아롱아롱한 아침 나절
야생화 올망졸망 피어있고
마른 가지 봉싯봉싯 눈 틔우는
희끗희끗한 가르마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싸득싸득 올라 간다.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나고
바람은 산들산들 부는데
새들은 지지배배 우짖는다.

소나무 그늘 사이 햇빛은
고실고실한 산길에
듬성듬성 빛나고
시냇물은 도란도란 흐른다.
 
등 굽은 ㄱ자가 뒷짐지고
살망살망 걷는 길에
어린이가 자박자박 걷고
젊은이는 성큼성큼 걷는데
누렁이가 촐랑촐랑 걷는 사이로
할머니는 타박타박 걷는다.
 
낮술에 취한 사람이
야몽야몽 세상사 이죽거리는데
옆 살걸음 걷는 친우는
히죽히죽 웃기만 한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꼬부랑 글자에 치여
천대 받아 왔지만
그래도 시인들이 자기를 알아 준다고
오늘도 등 굽은 ㄱ자는
정겨운 맵시로
미소 지으며 걷는다.
 
서산에 해는 뉘엿뉘엿 지고
머얼리서 음메 음메 송아지 우는데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저녁 연기 모락모락 피워 올린다.


모란꽃의 덕성

                             槿岩/유응교

부티가 나고 돈 많은
미망인 이라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넘겨다보지만
자신이 땀 흘려 벌지 않는 재산은
오래 가지 못함을 아시는지요.
재물에 눈이 어두운 사랑은
아름다운 사랑이라 할 수 없겠지요.

지위가 높고
영화를 누린다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군침을 흘리지만
자존심만 높고 콧대가 높은 여인은
언제나 피곤함을 아시는지요.
사회적 지위와 명예만을 바라는 사랑은
세월과 함께 시들어 버리겠지요.

요염하고
풍만한 육체위에
벌 나비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저는 책을
가까이 한답니다
먹고 자고 놀면서
책을 읽지 않는 여인은
향기 없는 꽃이란 걸 아시는지요.
비만한 육체위에
쾌락을 추구하는 사랑은
순간의 희열과 허탈감만 남기겠지요.

며느리밥풀꽃

                                槿岩/유응교

욕심이 하늘같고
심술이 놀부 같은
시어머니를 모시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을 한 저에게
밥이라도 제대로 먹게 했으면
이렇게 되진 안했을 거예요

왜 사람들은 그토록
욕심이 많고 인색할까요.
죽어라 일을 시켜놓고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는
오늘의 현실을 보면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어요.
꼭 거리로 뛰쳐나와
붉은 띠 두르고
외쳐야 하나요

그토록 먹고 싶은
하얀 쌀밥 한 그릇
마음 놓고 먹어보지도 못하고
굶주림에 시달려 이승을 하직한
제 슬픈 과거를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시어머니들은
며느리를
딸처럼 여기고 사랑해 준다니
얼마나 살기 좋은
세상인지요.
언제나
그 사랑 잃지 마셔요.
아셨죠


맨드라미의 충성

                         槿岩/유응교

배신과
어두운 음모가
독버섯처럼 번지는
화려한 왕실에서
그대를 온전히
곁에서 지켜온 나날이
얼마나 큰 보람인지
그대는 모르실거예요.

그러나
어느 날 그대가
간신들의 모함으로
저를 처형하는 그 순간까지
그들과 맞서 싸우고
목숨을 바쳐 그대를 구한
저의 충성심을 그대는 아시나요

사람들은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답니다.
웃으며 칼을 가는
비겁한 무리들이 득실거리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별을 준비하고
달콤한 아첨 속에
독배의 쓴잔을 준비하는 군상들이
오늘도 우리주위에 있음을
우리는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손에 튼튼한 방패를 들어야 합니다.
그대가 화려한 벼슬자리에 있을수록...


도라지꽃의 비련

근암/유응교

가난하지만 땀 흘려 일하고
배운 건 없지만 심성이 착한
그런 사람이 전 좋아요.

돈을 긁어 모아놓고 큰소리치고
높은 벼슬자리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그런 사람이 전 싫어요.

관가에 끌려가 매질을 당하고
감언이설로 회유를 해도 제 마음을
하루아침에 꺾어 버릴 수는 없어요.

바람소리 물소리 한데 어울리고
새들이 노래하는 푸른 숲 길에서
오로지 그대만을 기다리고 싶어요.

그대를 위하여 이승을 떠나더라도
그대가 다니는 산길에 묻어주세요.
청초한 미소로 향기를 보내드릴게요.


메밀꽃 피는 마을

                                        槿岩/유응교

무더운 여름 밤
봉평 장에서
돌아오던 허 생원이
물레방아 간에서 사랑을 나눈 건
오로지 하얗게 차려입고
끝없이 유혹의 손짓을 한
제 탓이었습니다.

달빛 쏟아지던 밤
일상의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그토록 목마른
사랑에 갈증을 느낀 건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눈부시게 하얀
저의 미소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토록 간절했던 그 사랑도
당나귀 방울 소리 따라
기약 없이 떠나버린 건
눈물에 젖어 하얗게 손을 흔들게 한
그날 밤 불어대던 비바람 때문이었습니다
 



박꽃 피는 밤

                              槿岩/유응교

기약 없이 떠나간 그대를 위하여
지붕위에서 어두운 밤길 환히 비추며
기다리는 제 심정을 아시나요

모진 삶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이별의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고
하얗게 웃고 있는 제 마음을 아시나요

먼 훗날 변함없이 흐르는 세월 너머로
쌓이고 쌓인 눈물의 사연을 뒤로하고
그리움의 물을 퍼 담을 제 가슴을 아시나요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 상사화의 이별 , 한글 봄 나들이 풍경, 모란꽃의 덕성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