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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의 기행수필 1) 마음(心)의 섬, 지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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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0.05.18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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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하늘과 넓고 청청한 바다, 연둣빛 빛깔이 짙어가는 싱싱한 숲이 어우러진 그녀가, 살아 있는 생명의 빛깔로 다가왔다. 바다를 지배하는 용왕이 빚었을까. 우주만물과 인류를 창조한 하느님의 선물일까. 무릉도원과 선경에서 노니는 신선과 선녀의 창작일까. 필시, 하늘에서 내려다보아야만 그녀의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운 마음(心)을 읽을 수 있을 터이니, 선녀가 채색하고, 신선이 일필휘지한 한 폭의 문인화(文人畵)인 성싶다.

 그녀를 찾아가는 길목에 있는 거제도는 크고 작은 60개의 섬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섬, 여행의 보고로 한국의 나폴리로 불린다. 바다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해금강과 지중해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관광의 요충지인 동시에 섬에서 또 다른 섬으로 여행하는 해상의 중심이요, 섬 여행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고운 모래대신 반질반질한 흑진주 빛깔의 몽돌에 부딪히는 해조음은 환경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選’으로 선정될 정도다. 게다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 대우조선해양(주)옥포조선소, 장목조선소 등 선박의 왕국으로 재정자립도가 높고 다른 도시의 산업단지와 달리 생기가 넘쳐 흘렀다. 

 거제도의 대표적인 섬 여행은 연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진다는 섬 속의 작은 섬으로 불리는 외도를 단연 으뜸으로 친다. 하지만 나는 원시림의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한 사랑의 섬으로 불리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더 빼앗기고 있다.
 
Y문우님이 한 번 보고 동백꽃 사랑에 푹 빠져 버린 곳으로, 한국관광공사가 올 3월의 여행지로 그녀를 선정했기 때문에 더욱 정감이 간다. 벼르고 벼르다 올 어린이 날, 전북수필문학회 문우들과 동심의 나래를 펼치며 그녀를 찾아 소풍을 다녀왔다.

거제도 장승포항 선착장에 설치된 관광안내도가 “섬과 여유가 있는 곳, 원시림을 그대로 간직한 그곳에서 영원히 기억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가라.”며 악수를 청했다. 생선 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선착장에서 해산물을 파는 아저씨의 정겹고 구수한 입담도 발길을 붙잡았다.

장승포항을 떠난 유람선이 십 분쯤 짙푸른 바닷물을 가르자 원시림의 자연미를 그대로 간직한 그녀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선착장 뒤편 비탈진 언덕에 자리한 아름드리 낙락장송과 동백 숲도 마중 나왔다. 문향의 고장 전주에서 찾아간 선녀와 나무꾼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호젓한 오솔길을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마음속으로 동경해왔던 동백꽃은 요염한 핑크빛 사랑으로 내 마음(心)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도종환 시인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버려야 아름다운 꽃이 다시 핀다.”는 말을 시연이라도 하듯 그 요염한 꽃빛을 발하던 동백은 내년에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 꽃망울과의 아쉬운 고별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홍보대사로 임명된 동박새는 동백나무 사이를 오가며 사랑의 언어로 숲을 해설하며 관광객을 맞았다.

 봄의 전령사, 또는 사랑의 대명사로 알려진 동백은 남해안의 섬마다 지천을 이루지만, 여수 오동도의 동백과 고창 선운사의 춘백(春栢)을 으뜸으로 친다. 하지만 나는 사랑의 마음을 선물하는 그녀의 친구 동백에게 더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

 천인단애를 이룬 해변으로 발길을 돌리자, 강태공들이 진을 치고 앉아 학꽁치와 고기를 잡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대나무 다섯 개와 그물을 이용하여 만든 기구를 바다에 던져 놓고 밑밥을 먹기 위해 모여든 물고기들을 잡는 재래식 뜰채낚시도 그 섬의 볼거리다.

 거제도 섬 중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외도는 숲과 정원을 화려하게 꾸몄지만, 왠지 성형과 화장으로 분장한 성형미인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반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천혜의 원시림과 꾸밈이 없는 자연미가 넘치는 그녀는 해맑은 소녀같이 느껴졌다.

한 시간 반 정도면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는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과 조감도를 보면 영락없이 마음심(心)자를 닮았다. 그리고 꾸밈없는 원시림의 자연미와 요염하게 핀 동백의 사랑을 사람의 마음에 심어주는 게 그녀의 매력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녀의 모습이 해삼을 닮았다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가 없다.
 
 조선 헌종 때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다는 그녀의 고향에는 현재 14세대가 옹기종기 모여서 사이좋게 밭농사와 과수원 그리고 민박으로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주민들이 강제로 이주했던 아픔의 역사가 있다. 8‧15 광복 직전까지 일본군 1개 중대가 주둔하며 요새지로 사용했던 섬 전체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일제의 잔재들이 암울한 우리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산 정상에 일본군들이 구축한 포진지, 산책로에 포탄을 보관했던 창고, 비행기가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잔디밭 활주로 등이 그랬다. 또한 일본군 소장의 자택으로 사용됐다는 일본주택은 잡초가 무성하고 곧 무너질 것 같아 침략자들의 굴욕을 말해 주는 듯했다. 

 천혜의 원시림 속에 은둔한 아름드리 낙락장송, 불의에 대쪽같이 맞섰던 선비정신의 대나무, 천인단애를 이룬 해안의 낚시터, 야자나무 위로 올려다 본 파란하늘, 전망대에서 넓고 창창한 바다를 가르는 쾌속선의 풍경, 요염한 꽃을 피우는 동백과 동박새, 금방 찬물로 세수한 소녀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연초록 여린 나뭇잎들이 모두 그녀의 벗이었다.

 그녀와의 작별이 아쉬워 해조음이 들려오는 민박집 가계에서 동동주를 일 배 일 배 부일배하다보니 불현듯 중국의 시성 이태백의 환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스쳐가며 산 같은 아버지처럼, 바다 같은 어머니처럼 살아가라고 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는 하늘이 내려준 천혜의 선물이자,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을 선물하는 거제도 동백섬, 지심도(只心島)였다.




(201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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