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3(금)

통합검색

검색형태 :
기간 :
직접입력 :
~

오피니언 검색결과

  • (기고) 나무 이야기
    우리나라처럼 나무를 사람에 비교하여 이야기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예를 들면 나무를 다루는 목수들은 판자가 뒤틀리면 나무가 꿈틀거린다고 하고, 많이 뒤틀리면 나무가 실성했다고 하며, 나무를 응달에 말릴 때는 아이들 재우듯이 재운다고 표현을 한다. 또 나무에 못질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다치게 하지 말라고 했으며, 가급적 못질 대신 요철을 만들어 끼워 맞추기를 했으며 이를 달랜다고 했다. 이런 표현들은 사람들에게 주로 쓰이는 말들이다. 목수들이 현장에서 생명이 없는 목재까지도 인간적 배려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목재 하나도 인간처럼 다루어서 만들어진 건물들은 몇 백 년의 세월을 굳건히 버티어 오늘날 까지 우리들에게 그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교훈을 남겨 주고 있다. 겨울 숲은 특히 나무들의 수형이나 질감이 눈에 잘 들어오는 시기이다. 옛날 어른들은 이맘때쯤 산에 올라 용도에 따라 재료를 마련한다. 건축 재료로 쓰일 것, 농기구로 쓰일 것, 화목으로 쓰일 것 등을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농경 사회에서는 겨울철 농한기를 이용하여 집집마다 내년 농사에 필요한 모든 농기구들을 직접 손으로 다듬고 만들고 정비를 하는 시기이다. 천연 소재로만 집을 짓던 시절 굵고 튼튼한 나무는 기둥감이 되었고, 가늘고 긴 나무는 서까래용으로 사용되었다. 또 집집마다 농사의 밑천으로 소를 키우고 있었으니 가마솥으로 하나씩 끓여야 하는 소죽도 화목을 이용하였다. 모든 취사와 난방을 나무로 하였으니 우리의 산천은 점점 헐벗기 시작하였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고 좋은 나무는 그야말로 조모리 베어져 나가는 수난을 당하였고 거기다 6.25 동란을 거치면서 더 황폐해지고 말았다. 그 역경을 딛고 푸르게푸르게를 외치며 온 산천에 나무를 심어 푸른산을 만들었고 마침 연료의 전환으로 루른산이 그대로 유지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남대문 사건이 났을 때 소나무를 찾기 위하여 헬기까지 동원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주 오지인 경북 울진, 봉화 등에는 금강송이라 불리는 위엄당당한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어서 임학계와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 그래서 “못생기고 허리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고 하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청옥산자연휴양림 숲해설가 남수자
    • 오피니언
    • 연재.기고
    2009-01-16
  • (칼럼) 도심의 숲 활용하기
    자연을 접하기 위하여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고도 어느 정도의 자연과 숲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아무리 복잡한 도시라고 하여도 주위를 잘 돌아보면 근린공원, 생태공원, 역사공원, 문화공원, 조각공원, 어린이공원, 수목원등을 비롯하여 테마를 주제로 한 공원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들 공원들은 기존의 숲을 이용하거나 조경을 하여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접하기 위하여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도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시설물들이다. 이런 곳들을 테마별로 잘 이용하면 얼마든지 자연의 맛을 느끼며, 산책이나 등산을 비롯하여 자녀들의 교육 까지도 겸할 수 있는 곳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좋고 또 하나 덧붙이면 환경오염의 주범인 자동차를 조금만 이용하거나,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환경도 지키고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으니 조건이 너무 맘에 든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지금 이대로 간다면 물 40년 지구100년” 이라는 끔찍한 현실 앞에 놓여 있다고 환경 지킴이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주말이라도 시멘트 공간을 벗어나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하늘 색깔이 옛날의 그 색깔인지 확인하는 여유라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어린 시절 도화지 속의 하늘은 파랑색 그 자체였다. 오늘날의 현실은 그런 하늘빛이 나타나면 매스컴의 보도 거리가 된다. 주5일 근무를 기회 삼아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동안이라도, 사무실과 가정의 전열 기구들 컴퓨터, 프린터기, 조명등을 비롯하여 냉장고, 세탁기, 게임기, 청소기, 밥솥 등등 이들이 내뿜는 열기와 전자파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것이다. 우제 우리의 생활은 전자 제품들 없이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런 기계들을 움직이게 하는 전기는 무엇으로 만들어 지는가?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자연을 이용한 풍력이나, 수력도 있지만 전기를 많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미미한 실정이다. 땅속에 매장되어 있던 화석 에너지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고, 물 또한 40년이라는 시한부 경고에 처해 있으니 암담할 노릇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지금 이대로 간다면” 이라는 유일한 단서를 이 순간부터라도 지금 이대로 안 가게 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환경이란 무엇이며 환경운동이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선거운동처럼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가 터지도록 소리 지르고, 뒤에서는 물밑으로 돈 봉투가 오고가는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자연을 가까이하고, 생태계를 관찰하고, 풀 한포기도 생명이 있는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등등.........이런 좋은 말들 다갔다 붙여도 개개인 스스로가 행하지 않으면 지구의 수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씩 비워 가며 자연과 친해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안정을 되찾았을 때 생명 존중 사상을 비롯하여 효 사상 등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면 너무도 복잡 다양하고 숨 돌림 틈이 거의 없다. 어린 유아들은 달큼한 아침잠을 짜증으로 내 쫒으며 엄마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이나 보모의 집으로 인도되고, 초등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는 동시에 각종의 학원 차량들에 의해 대 여섯 군데는 족히 돌아야 하루일과가 끝나는 고달픈 여정이며, 중 고등학생들은 자의든 타의든 명문대라는 저 높은 곳을 정복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오직 정답, 오답 가리기에 청춘을 묻어 버리고 살아간다. 외국 선진국의 경우 생명 존중과 자연환경을 중요시하여 유치원 수업을 일주일에 몇 회는 자연을 접하는 곳에 나가서 자연 놀이와 체험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 많다. 유럽에서는 새로운 유치원을 건립할 때 숲 속이 아니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와 비교가 된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학교 건축물을 아예 목재로 공사를 하기도 하며 기존의 시멘트 건물은 리모델링으로 교실 안을 목재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그 결과 심리적 안정감을 많이 회복하였고, 산만한 어린이를 비롯하여 학교 폭력이 현저히 줄어드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도 이제는 인성이 중요시되는 그런 방향으로 흘렀으면 좋겠다. 집과 학교를 잠깐씩이라도 벗어나 아름답게 꾸며 놓은 공원을 이용하는 것도 자연과 하나 되는 방법일 것이다. © 산림환경신문
    • 오피니언
    • 칼럼
    2008-10-28

포토뉴스 검색결과

  • (기고) 나무 이야기
    우리나라처럼 나무를 사람에 비교하여 이야기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예를 들면 나무를 다루는 목수들은 판자가 뒤틀리면 나무가 꿈틀거린다고 하고, 많이 뒤틀리면 나무가 실성했다고 하며, 나무를 응달에 말릴 때는 아이들 재우듯이 재운다고 표현을 한다. 또 나무에 못질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다치게 하지 말라고 했으며, 가급적 못질 대신 요철을 만들어 끼워 맞추기를 했으며 이를 달랜다고 했다. 이런 표현들은 사람들에게 주로 쓰이는 말들이다. 목수들이 현장에서 생명이 없는 목재까지도 인간적 배려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목재 하나도 인간처럼 다루어서 만들어진 건물들은 몇 백 년의 세월을 굳건히 버티어 오늘날 까지 우리들에게 그 역사를 되새기게 하는 교훈을 남겨 주고 있다. 겨울 숲은 특히 나무들의 수형이나 질감이 눈에 잘 들어오는 시기이다. 옛날 어른들은 이맘때쯤 산에 올라 용도에 따라 재료를 마련한다. 건축 재료로 쓰일 것, 농기구로 쓰일 것, 화목으로 쓰일 것 등을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농경 사회에서는 겨울철 농한기를 이용하여 집집마다 내년 농사에 필요한 모든 농기구들을 직접 손으로 다듬고 만들고 정비를 하는 시기이다. 천연 소재로만 집을 짓던 시절 굵고 튼튼한 나무는 기둥감이 되었고, 가늘고 긴 나무는 서까래용으로 사용되었다. 또 집집마다 농사의 밑천으로 소를 키우고 있었으니 가마솥으로 하나씩 끓여야 하는 소죽도 화목을 이용하였다. 모든 취사와 난방을 나무로 하였으니 우리의 산천은 점점 헐벗기 시작하였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고 좋은 나무는 그야말로 조모리 베어져 나가는 수난을 당하였고 거기다 6.25 동란을 거치면서 더 황폐해지고 말았다. 그 역경을 딛고 푸르게푸르게를 외치며 온 산천에 나무를 심어 푸른산을 만들었고 마침 연료의 전환으로 루른산이 그대로 유지되는 시점에 이르렀다. 남대문 사건이 났을 때 소나무를 찾기 위하여 헬기까지 동원해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주 오지인 경북 울진, 봉화 등에는 금강송이라 불리는 위엄당당한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남아 있어서 임학계와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고 있다. 그래서 “못생기고 허리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라고 하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청옥산자연휴양림 숲해설가 남수자
    • 오피니언
    • 연재.기고
    2009-01-16
  • (칼럼) 도심의 숲 활용하기
    자연을 접하기 위하여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고도 어느 정도의 자연과 숲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아무리 복잡한 도시라고 하여도 주위를 잘 돌아보면 근린공원, 생태공원, 역사공원, 문화공원, 조각공원, 어린이공원, 수목원등을 비롯하여 테마를 주제로 한 공원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들 공원들은 기존의 숲을 이용하거나 조경을 하여서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연을 접하기 위하여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도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시설물들이다. 이런 곳들을 테마별로 잘 이용하면 얼마든지 자연의 맛을 느끼며, 산책이나 등산을 비롯하여 자녀들의 교육 까지도 겸할 수 있는 곳이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좋고 또 하나 덧붙이면 환경오염의 주범인 자동차를 조금만 이용하거나,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환경도 지키고 맑은 공기도 마실 수 있으니 조건이 너무 맘에 든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지금 이대로 간다면 물 40년 지구100년” 이라는 끔찍한 현실 앞에 놓여 있다고 환경 지킴이 선생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주말이라도 시멘트 공간을 벗어나 자연의 숨결을 느끼며 하늘 색깔이 옛날의 그 색깔인지 확인하는 여유라도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어린 시절 도화지 속의 하늘은 파랑색 그 자체였다. 오늘날의 현실은 그런 하늘빛이 나타나면 매스컴의 보도 거리가 된다. 주5일 근무를 기회 삼아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 뒷산을 산책하는 동안이라도, 사무실과 가정의 전열 기구들 컴퓨터, 프린터기, 조명등을 비롯하여 냉장고, 세탁기, 게임기, 청소기, 밥솥 등등 이들이 내뿜는 열기와 전자파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것이다. 우제 우리의 생활은 전자 제품들 없이는 곤란한 지경에 이르렀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런 기계들을 움직이게 하는 전기는 무엇으로 만들어 지는가? 화석연료와, 원자력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자연을 이용한 풍력이나, 수력도 있지만 전기를 많이 만들어 내지 못하는 미미한 실정이다. 땅속에 매장되어 있던 화석 에너지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고, 물 또한 40년이라는 시한부 경고에 처해 있으니 암담할 노릇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지금 이대로 간다면” 이라는 유일한 단서를 이 순간부터라도 지금 이대로 안 가게 하면 될 것 같기도 한데...... 환경이란 무엇이며 환경운동이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선거운동처럼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가 터지도록 소리 지르고, 뒤에서는 물밑으로 돈 봉투가 오고가는 그런 것은 분명 아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자연을 가까이하고, 생태계를 관찰하고, 풀 한포기도 생명이 있는 것이니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등등.........이런 좋은 말들 다갔다 붙여도 개개인 스스로가 행하지 않으면 지구의 수명은 단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씩 비워 가며 자연과 친해지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안정을 되찾았을 때 생명 존중 사상을 비롯하여 효 사상 등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들여다보면 너무도 복잡 다양하고 숨 돌림 틈이 거의 없다. 어린 유아들은 달큼한 아침잠을 짜증으로 내 쫒으며 엄마의 손에 이끌려 유치원이나 보모의 집으로 인도되고, 초등학생들은 학교가 끝나는 동시에 각종의 학원 차량들에 의해 대 여섯 군데는 족히 돌아야 하루일과가 끝나는 고달픈 여정이며, 중 고등학생들은 자의든 타의든 명문대라는 저 높은 곳을 정복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오직 정답, 오답 가리기에 청춘을 묻어 버리고 살아간다. 외국 선진국의 경우 생명 존중과 자연환경을 중요시하여 유치원 수업을 일주일에 몇 회는 자연을 접하는 곳에 나가서 자연 놀이와 체험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 많다. 유럽에서는 새로운 유치원을 건립할 때 숲 속이 아니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 곳도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와 비교가 된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학교 건축물을 아예 목재로 공사를 하기도 하며 기존의 시멘트 건물은 리모델링으로 교실 안을 목재로 바꾸어 나가고 있다. 그 결과 심리적 안정감을 많이 회복하였고, 산만한 어린이를 비롯하여 학교 폭력이 현저히 줄어드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도 이제는 인성이 중요시되는 그런 방향으로 흘렀으면 좋겠다. 집과 학교를 잠깐씩이라도 벗어나 아름답게 꾸며 놓은 공원을 이용하는 것도 자연과 하나 되는 방법일 것이다. © 산림환경신문
    • 오피니언
    • 칼럼
    2008-10-28
비밀번호 :